"여행이란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벗어남이요,
다른 관점 속에 나를 데려감이자,
새로운 곳에서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함이다." - Dr. 眞 -
언제나 즐거움의 대부분은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다.
혼자하는 여행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전혀 꺼리낌을 없게 한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도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위치에 사람들을 만났는데 참 나와는 다른 사고와 삶의 액션을 취하는 친구들이었다.
직업으로만 떠올려봐도, 벌을 연구하는 과학자, 수학교사, 배관공, 건설현장 노동자, 공항안전요원, 고등학생, 대학생, 사업가, 길거리 악사, 스쿠버다이빙 강사, 사진작가, 그리고 원주민들...
모두는 각자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온 이방인들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동양에서 온 Chinito, 이방인 중에 이방인이었으니 참 어색한 일이다.
원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함이 큰 아쉬움이었는데 한번은 시장에서 과일가게 아주머니들을 사진 찍다가 몰매를 맞을 뻔했고, 그 후엔 허리춤에 반쯤 숨긴 사긴기로 몰래 찍는 사진들은 여행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분명 옳은 방법은 아니였던 것 같다.
왠지 나의 눈에는 그들의 조용한 안식처, 위대한 자연 앞에 침묵하고 있는 공간을 시끄럽게 왁잘거리는 이방인들로 북적거리게 만드는 관광이라는 행위는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 것 같다.
어쩜 이는 지극히 단면적이고 표상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는 나의 유치한 인식체제에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땅에 주인은 온데간데 없어진 듯 보이지 않고, 능숙한 서비스업으로 단련된 미소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그런 곳에선 난 어쩜 더욱 편안함을 느끼질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이 환경에 적응한 것인지 아님 바뀌어가는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곳 원주민들은 1 peso, quetzal, lempira 를 얻기 위해 관광객들에 달라 붙어 물건을 팔려고, 가이드를 해주려고, 아님 구걸을 한다.
그래 모든 활동은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의 다름을 교환하는 것이다. 내가 콜럼버스의 발견 이라는 이 멍청한 말을 '다른 두 세계의 만남', '콜럼버스의 교환'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부르길 좋아하듯 말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만남은 언제나 불평등한 입장에서 이루워진다. 이 점이 나를 씁쓸하게 하는 것이다.
고작 이런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자였기에 역시 원주민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언제가 남경이가 인용했던 '세계인' 에 관한 어구가 생각났다. 아직 세계인이 되기엔 나의 생각의 그릇이 많이 좁은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나에 마음에 다가와 손으로 만져보고 두드려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아이들이다. 원주민 아이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들의 '위삘' 이라는 전통의상은 색색의 다채로운 실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무늬를 수놓은 아름다운 긴 치마였는데 어린 꼬마 아가씨가 이 위삘을 입고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웃지 않을 수 없고, 너무나도 예뻤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일하고 하고 있거나, 정신없는 시장 바닥에서 돈을 만지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삶의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지.... 가슴이 아팠다.
내가 배부른 헛소리를 하는 걸지 모르겠지만, 저 나이때엔 돈보다는 좀 더 밝고 아름다운 색깔의 물건을 만졌으면 좋겠다.
꿈을 꿀 수 있을까? 저 친구들이 청춘을 맞이 하였을 때?
Chetumal 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2007년 봄 어느날 여행노트에 끄적거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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